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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로큰롤가수 리틀 리처드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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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칭 (아니면 자타공인) King of Rock and Roll[2]

5월9일 사망한 가수 리처드 리틀
미국의 가수. 본명은 리처드 웨인 페니먼(Richard Wayne Penniman)으로, 1932년 12월 5일 조지아 주 메이컨에서 출생했다.

리틀 리처드는 기본적으로 아웃사이더 중에 아웃사이더였다. 일단 흑인이고, 성격도 문제가 많았고[3], 양성애자였으며, 한창 때는 당시 로큰롤 가수 답게 마약도 했다. 특히 동성애 성향 때문에[4] 집에서 쫓겨난 적도 있다. 영어 위키피디아만 봐도 이 사람이 그 보수적인 1950년대에 실존한 인물인지 의심이 갈 정도로 희한한 인생역정을 보여준다(...).# 요약하자면 만화나 영화에 한두명쯤 나오는 맛이 좀 많이 간 천재(...) 정도라고 할 수 있겠다

이 때문에 리틀 리처드 하면 가장 유명한 것이 똘끼다. Tutti Frutti로 대표되는 똘끼가 넘치는 그의 곡들은 대중음악에 '저항의식'을 최초로 주입한 사례였다. Tutti Frutti에서 리틀 리처드는 괴성을 지르는 등 독특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건 계획된 연출이 아니었다. 무명인 리틀 리처드가 처음으로 녹음하러 가게 되었는데, 음반사 반응도 안 좋고 녹음도 제대로 안되자 성질이 난 리틀 리처드가 고함소리와 함께 난동을 부렸고 이걸 조금 순화한 것이 완성된 곡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록 음악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보컬 기법인 샤우팅과 그로울링의 시초가 이런 웃긴 해프닝에서 비롯된 셈이다. 마냥 농담만으론 치부할 수 없는 것이 폴 매카트니와 같은 60년대 록스타들이 그의 괴성을 본따 고음 애드립을 집어넣었다 밝혔고 이를 70년대 이후에 들어서 하드 록과 메탈밴드들이 발전시켜 현재의 창법으로 정립이 되었다.

1957년 호주 투어중에 갑자기 은퇴하여 앨러배마의 오크우드대학에 입학해 신학교육을 받고 목사가 되어 갑자기 골수 기독교도로 전향하여 로큰롤을 사탄의 음악이라 주장하며 팝 가스펠 쪽으로 넘어갔다. 호주 투어 도중에 비행기가 고장을 일으켜서 탑승객 전원이 사망할 위기에 처했다고 한다. 이때 리틀 리처드는 그 동안 믿지 않았던 하느님에게 제발 살려달라고 기도를 하며 만약 한번만 살려주시면 열성적인 기독교인이 되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한다. 다행히도 비행기는 불시착하여 리틀 리처드는 구조되었고 그는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이후 그는 지구가 갑자기 불에 뒤덮여서 종말을 맞이하는 환상을 보고 이를 종교적 계시로 받아들여서 완전히 전향하게 된다. 약을 많이 해서 그런 것 같은데 미국 흑인에서 출발한 로큰롤이 미국 보수계에게 저질문화란 비평을 받아 일찌감치 몰락하고 자신의 라이벌이자 친구인 Larry Williams[5]가 마약 문제로 힘들어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리틀 리처드는 약물, 동성애, 로큰롤 등 자신이 속해있던 세계 전체를 비난하면서 연주와 포교 여행을 다녔던 것이다. 이 때는 그래도 팝 가스펠 가수로 어느정도는 성공한 편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이 아니다. 1962년 영국 복음 투어 도중에, 리틀 리처드는 화려한 복장을 하고 무대에 서서 보여준 역동적인 퍼포먼스 때문에 기독교인들에게 비판을 받았다는 이유로, 목사와 가스펠을 때려치우고 다시 록음악으로 복귀했다. 이런 전향에는 시대적 배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60년대 들어서 미국 대중음악계에 브리티시 인베이전이 일어난 것이다. 사실 리틀 리처드는 브리티쉬 인베이전 이전에 이미 비틀즈를 만나 그들의 음악에 대해 칭찬한 적이 있었다.[6] 음악만 들었을 때는 얘네들이 흑인인 줄 알았다고.(...) 브리티시 인베이전 이후 비틀즈나 롤링 스톤즈를 비롯한 레전드 밴드들이 리틀 리처드를 훌륭한 선배로 입을 모아 이야기하자 기사회생 하게 된 것. 실제로 믹 재거는 학생시절부터 리틀 리처드의 음악을 좋아했고 비틀즈는 초기 공연에서 리틀 리처드의 곡들을 꾸준히 연주했다. 특히 폴 매카트니가 리틀 리처드를 좋아했다고 한다.#[7]

이후 활동은 혼돈의 도가니. 록음악과 종교계를 거의 시계추처럼 오가더니, 심지어는 유대교로 개종하기도 했고 연기한다고 영화에 출연한 적도 있다. 이 때문에 리틀 리처드는 완전히 농담거리 취급이 되어서 1962년 첫번째 은퇴 이후의 활동은 잘 언급도 되지 않는다. 참고로 1964년 자신의 밴드에 모리스 제임스라는 왼손잡이 기타리스트를 영입했는데, 1년쯤 활동하다가 "왜 나보다 옷을 더 멋있게 입느냐"라며 해고했다. 이 사람이 바로 훗날 지미 헨드릭스가 된다.# 천재는 천재를 알아보고 해고한다 지금은 그냥 이런 저런 공연이나 쇼에 화석처럼 등장하곤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역시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만고의 진리 때문에, 좀 이상하긴 해도 록 음악의 원로 취급을 받고 있다. 그리고 리틀 리처드가 이상한 짓을 하면 "아 원래 걘 그러니까" 하고 넘어가는 분위기도 생겼다 참고로 이 영감님 2020년 현재에도 정정하게 살아있다. 어쨌거나 음악적으로 활동한 탓에 1986년에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올랐고, 헐리웃 명예의 거리에도 손자국을 남겼고, 작곡가 명예의 전당에도 이름을 올렸다.

2000년도에 전기영화가 제작된 바 있는데 그렇게 큰 성공은 거두지 못했다.#

2020년 5월 9일. 현지 시간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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